작성일 : 2006-08-03 01:57
프리드리히 뤼게르트
너는 낮에는 그림자
밤에는 빛이다.
너는 나의 비탄 속에 살아있고
마음 속에서는 죽지 않는다.
내가 나의 천막을 치는 곳에
너는 바로 나의 곁에 머물고 있다.
너는 낮에는 나의 그림자
밤에는 나의 빛이다.
내가 너에 관하여 물으면
나는 너의 소식을 듣는다.
너는 나의 비탄속에 살아 있고
마음 속에서는 죽지 않는다.
너는 낮에는 그림자
밤에는 빛이다.
너는 나의 비탄속에 살아 있고
마음 속에서는 죽지 않는다.
(시 출처 :만화 1815... 김진作 中에서)
프리드리히 뤼게르트Friedrich Ruckert는 1826년 에를랑겐대학, 1841년 베를린 대학교의 동양어학 교수였다. 후기 로망파의 시인으로, 시집에는 《사랑의 봄:Liebesfruhling》(1823) 《브라만의 지혜:Die Weisheit des Brahmanen》(1839) 등이 있다. 그는 많은 시를 썼으나 모두 고전파 ·로망파 ·동양시의 절충이었다. 동양문학을 소개하였으며, 페르시아의 가젤 마카메 시형(詩形)을 도입하였고, 그 모작(模作)인 《동방의 장미》(1822)가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시 ·동화 작가로서도 유명하다. 그의 많은 시가 F.P.슈베르트 R.A.슈만 등에 의해 작곡되었다. (네이버 백과사전)
뤼 게르트에게는 여섯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1833년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12월 26일 막내딸 루이제(1830년 6월 25일생)가 성홍열에 걸렸고 닷새 뒤인 12월 31일에 죽었다. 이어서 다섯 살이던 Ernst(1829년 1월 4일생) 역시 이 병에 걸려 1월 16일에 죽었다. 말러가 뤼케르트의 시에 공감을 느낀 것은 뤼케르트가 잃은 두 아이 중 하나인 Ernst가 1874년에 죽은 말러가 가장 사랑했던 동생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아버지 프리드리히 뤼케르트는 남매를 한꺼번에 잃은 슬픔과 고통에서 오랫동안 헤어나지 못하였고 죽을 때까지 그 아이들의 초상화를 가깝게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1834년 첫 6개월 간 그는 하루 3, 4편의 시를 써서 죽은 아이들을 추모했는데 그것이 425편으로 모였고 그 후 또 18편을 더해 모두 443편이 되었다.(내용 출처 : 이스리님 블로그http://blog.naver.com/viriditas?Redirect=Log&logNo=120026783692)
원래 여기에 제 이야기를 쓰고자 했지만 뭐라 써야 될지 몰라 그냥 시와 지은이에 대한 내용만 올립니다. 카나에서 숨진 아이들을 비롯한 어리거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모든 이의 명복을 빕니다.
나의 기억 속의 그 사람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