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과춤을추다

[단편소설]염통이 뛰다

얼음날개 2012. 12. 24. 21:31

작성일 : 2009-08-16 13:18

염통이 뛰다.

(부제 : 죽음의 신을 속이다.)

얼음날개


그는 지금 가슴이 아파오는 것을 참아내고 있었다. 곧 염통이 터질 것 같은 아니, 무언가가 염통을 터트리려는 듯이 찔러대는 고통을 견디려고 애썼다. 그러나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고통은 심해졌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고 비튼다. 그러나 그 고통은 여전하다. 그는 주저앉았다. ‘죽음의 신이 나를 데려가려고 내 가슴을 칼로 찌르는 같아. 데려가는 건 좋지만 이렇게 아픈 건 싫은데.’ 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잠시 며칠 전 일이 생각났다.

옆집 할머니와 수다를 떨었다. 누가 더 오래 살고 누가 더 빨리 죽을지에 대해. 옆집 할머니는 당연히 총각이 더 오래 살겠지.” 라고 말했다. 그건 누가 봐도 당연한 듯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인생은 모르는 것이라며 자신이 먼저 죽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렇게 서로 자기가 먼저 죽을 거라며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두 사람은 먼저 죽는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상대방에게 준다는 약속을 종이에 적어 교환을 했다. 그 뒤에 한동안 그 할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진짜 먼저 세상을 떠났는지 집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자기 괜찮아?”

어떤 아가씨가 다가와 잡고 묻는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문득 이 여자 어디서 봤던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에 없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는 지금 거기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이대로 있다간 죽겠다고 생각했다. 죽음을 기다리기는 했지만, 이렇게 고통스러운 죽음은 그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그가 원한 것은 고통 없는 평온한 죽음을 원했던 것이다. 그의 고통은 더욱 심해지고 모든 생각을 정지시켜 버렸다. 더 이상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주저 앉아버렸다. 그녀는 상태가 심각해 보이자 서둘러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그녀는 계속 그와 도로 쪽을 번갈아 보며 발을 굴렀다. 몇 분 뒤에 구급차가 도착을 했다.

이분인가요?”

의사가 그녀를 보고 묻는다.

그녀가 대답했다.

어디 좀 봅시다.”

의사는 그가 가슴을 부여잡는 것을 본다. 그의 상태를 살펴보고는 그를 구급차에 태웠다.

구급차는 경광등을 켜고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며 빠르게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는 환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용어로 간호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환자에게는 염통에 이상이 있는 것 같으니 자세한 검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가슴을 부여잡고 눈앞은 마치 나오지 않는 텔레비전 마냥 흐릿해져가는 것을 느끼다 기절을 하고 말았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병상 위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의사는 그가 의식을 차리자 다행이라며 웃었다. 그리고 그에게 새로 염통을 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흐릿한 눈으로 의사를 바라보았다. 초점을 애써 맞춘 뒤에 시야에 들어온 그 의사는 나이가 좀 되어보였고 머리는 28 가르마를 하고 있었다. 안경을 통해 자신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그런데 뭔가가 좀 이상해 보였다. 그는 고개를 움직여 가슴 쪽을 보았다. 가슴에서 나온 관을 통해 자신의 피가 옆 기계로 흘러들어가 펌프질 되어 다시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가슴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수술은 끝난 뒤였고, 그의 염통은 이미 몸 안에 없었던 것이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의사의 말에 그다지 크게 기쁘지 않았다. 다행인건 저 큰 것을 몸에 달고 계속 누워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가만히 누워있자니 좀이 쑤셨다. 몸을 뒤척이려고 해보았다. 그러나 조금만 움직여도 더 큰 통증이 밀려왔다. “그런데 왜 바로 다른 염통으로 달지 않는 거죠?” 그의 말에 의사는 바로 염통을 달지 않는 건 환자들이 단 염통을 맘에 들지 않아서 다시 수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임시로 기계에다 연결을 한 것이라고 했다.

어떤 염통을 다실 겁니까?”

그는 인공염통과 돼지 염통 그리고 인간 염통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인간의 염통을 받게 되면 정신 감정도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일부 인간들이 인간적인 우월성을 내세워 다른 장기나 결함을 가진 사람들을 차별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 했다. 돼지 염통은 인간과 가까운 장기라 거부 반응이 적을 거라며, 거기에 덧붙여 무균 돼지의 염통이라 그리 걱정 할 것은 없다고 했다. 인공염통은 특별히 걱정 할 것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가끔 기기 오류의 위험이 있지만 확률적으로 그런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했다. 그는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인간의 염통은 귀했다. 기증자가 많지 않아 줄이 밀려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운이 좋아 인간의 염통을 이식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다지 그런 것에 욕심이 나지 않았다. 돼지 염통은 왠지 내키지 않았다. 돼지 장기를 몸에 달고 다닌다고 생각하니 왠지 꺼림직 해졌다. 그 이유는 자신도 모른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인공염통은 가끔 제품의 오류로 인한 사고가 있어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보았다. 붕대 사이로 빠져나온 호스에 피가 나오고 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보니 아직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그제야 느껴지는 듯 했다. 마취가 풀렸는지 고통도 더 심해졌다. 그는 고통을 애써 참으며 고개를 돌려 밖을 보자 새가 나뭇가지에 내려앉는 모습을 보았다.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그는 새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새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다른 곳으로 푸드덕하고 날갯짓을 하며 날아갔다.

 

문득 떠오르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옛날에 한 여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 아들은 매우 병약해서 죽음의 신이 그 주위를 맴돌며 그 생명을 가져가려고 지키고 앉아 있었다. 어느 날 길을 가던 눈먼 점쟁이가 그 집에 들러 여자에게 호화롭지는 않지만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그 점쟁이는 답례로 죽음의 신이 아이를 데려가지 못하는 방법을 몰래 일러주었다. 그 점쟁이는 죽음의 신을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소년의 어머니는 점쟁이가 일러준 대로 죽음의 신이 자신의 아들을 데려가지 못하게 하려고 죽음의 신의 눈을 속이려고 작정하였다.

아들을 대신 할 아들 닮은 아이 하나와 죽음의 신을 홀리기 위해 처녀를 준비하였다. 여자는 죽음의 신이 그저 처녀라면 사족을 못 쓴다고 한 점쟁이의 말에 따라 처녀에게 깨끗하게 목욕시키고 향기로운 향수를 바르게 하였다. 그리고 처녀를 벌거벗은 상태에서 춤추게 하고 난 뒤에 죽음의 신이 처녀의 춤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아들과 아이를 바꿔치기 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처녀는 춤을 다 추고는 어머니로부터 돈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죽음의 신은 처녀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아이를 보았는데 열도 없고 예전과는 다르게 건강해 보였다. 처녀의 춤이 아이의 병을 고친 것이라 생각하고는 분해하며 그 집을 떠났다. 그렇게 여자는 죽음의 신을 속였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약했고 죽음의 신은 약한 아이의 냄새를 맡고 다시 찾아올 것이었다.

여자는 점쟁이가 일러 준대로 죽음의 신이 오기 전에 약을 구해 아이에게 정성껏 먹여 고쳤다. 죽음의 신이 속은 것을 알고 다시 찾아 왔을 때 아이는 이미 건강해진 뒤였다. 화가 난 죽음의 신은 바로 돌아가지 못하고 집을 한 바퀴 돌고는 다른 곳으로 떠나 버렸다.

이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지금 그 여인처럼 자신도 죽음을 속이려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이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그는 뭔가 결정을 내린 듯 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그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의사가 다시 찾아왔다.

결정 하셨습니까?”

의사가 미소 지으며 묻자 의사의 말에 그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어떤 염통이든 상관없었다. 그에게 있어 어떤 염통이든 간에 큰 의미는 없었다. 그 어느 것도 그의 염통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선택해야 했다. 계속 그 상태로 누워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에겐 그만한 돈도 없었다. 그는 인공염통을 선택했다. 왠지 그게 나아 보였다. 그 어느 것이든 간에 그는 죽음의 신을 속이고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다. 인공염통이 고장이 나서 금방 멈추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 또 고통을 참아야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가 죽으려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어릴 때부터 병약했다. 그 때 죽지 않고 버텼다. 커가면서 그에게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때 죽었어야 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 끼치지도 않고 다 좋았을 것이라고. 그의 인생은 실패한 것이라 생각했다. 제대로 된 일 하나 없이 혼자 남았다. 그래서 그는 빨리 죽고 다음 생을 기약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목숨을 끊기엔 그에겐 용기가 부족했다. 그가 원하는 건 평온한 죽음을 이었던 것이다. 비록 그게 가능 할지 알 수 없지만. 의사는 설명서와 함께 주의 사항이 적힌 종이를 주며 몇 가지를 설명했다.

 

몇 주 뒤 그는 거리로 나왔다. 길가에 서있는 시계를 보고는 가계에서 생수를 하나 샀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약을 꺼내 입에 털어 넣고는 물을 들이켠 후 입안을 행군 뒤에 꿀꺽 삼켰다. 앞으로 이 일에 익숙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죽음의 신이 눈치 채고 다가와 그가 요술염통을 쓴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옳다구나 하고 그의 생명을 가져가 버릴 테니 말이다. 그러면 좋겠지만 그 동안에 밀려드는 고통을 감당할 수 없겠지.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가슴을 만졌다. 염통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자연스러운 박동은 아닌 듯 했지만 이내 그 이전에 자신의 심장의 박동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것은 자신의 염통의 박동을 느낀 것이 열 번도 채 안될 터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뭐 아무려면 어때.”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집으로 걸어갔다.

 

안녕?”

집으로 들어가다 마주친 아가씨가 자신을 보고 웃으며 인사를 한다.

못 보던 사람인데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한번 본 듯한 얼굴이었다. 완전히 낯설진 않았다. 그러다 쓰러질 때 봤던 그 아가씨라는 것을 기억해 내었다.

아아. 생명의 은인이로군.’

그는 감사의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괜찮아 보이네?”

그녀가 먼저 다정하게 말했다.

. 덕분에 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우리 전에 본적이 있던가요?”

하고 그가 묻자 그녀는 웃으며 자신이 누군지 모르겠냐고 되물었다. 그는 멍하니 여자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애를 써 봐도 기억에 없는 얼굴이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자신이 옆집 할머니라고 말했다.

?” 그는 깜짝 놀랐다.

그 모습을 보던 그 여자는 푸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전신 성형에 인공피부를 이식받았다고 했다. 덕분에 전 재산을 털었지만, 젊음을 되찾았다는데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가 왠지 공장에서 나온 로봇처럼 느껴졌다.

 

총각이 쓰러졌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다고.”

그녀는 그렇게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투로 말했다. 그는 아직 그녀가 할머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긴 검은 머리에 하늘하늘한 붉은 스커트와 어울리는 우유 빛 피부가 그 전의 모습과 연결이 안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어머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데.”

그녀는 말투를 고쳐 말했다. 그녀는 그와의 약속이 무효로 된 것은 유감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장난이었다는 것은 그녀도 그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그녀를 더 이상 볼 일은 없다는 것을 의미 하는 것이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예감대로 그녀는 이곳을 떠난다고 말했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그가 가까이 있어서는 원하는 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 그녀는 그라는 존재와 같이 있기엔 매우 껄끄러울 것이다. 뭐 당연하다. 그녀는 새로운 삶을 선택했고 과거와 같이 가기엔 앞으로 좋은 쪽 보다는 나쁜 쪽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기에 그녀는 옳은 선택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 나름대로 죽음의 신을 속인 그녀는 그녀가 죽음의 신을 속인 것처럼 다른 남자들을 속이게 되겠지. 어쩌면 안 죽으려는 지도 모른다. 왜 있잖은가 DNA 조작 같은 것으로. 며칠 전 뉴스에서 가능 할 지도 모른다고 그러던데 말이다.

인간이 의술을 행할 때부터 인간은 죽음의 신을 속여 왔다. 그리고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죽음의 신을 따돌리고 있는 것이다. 뉴스에서 본 것처럼 종국에는 죽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과연 옳은 일일까? 그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질문의 답을 생각하기엔 그는 많이 피곤했다. 그녀는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는 시내 쪽으로 종종걸음으로 뛰어갔다. 그는 잠시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전보다 키가 좀 커진 듯 느껴졌다. 이젠 죽음의 신뿐만 아니라 누가 봐도 다 속겠다고 생각했다. 왠지 그녀에게 속을 남자들이 불쌍해졌지만 그래봤자 남자들도 저러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는 머리를 가로젓고는 터덜터덜 걸어 집으로 걸어가다 문득 할머니 집의 창을 들여다보았다. 집안은 텅 비어 있었다. 이제 누구와 수다를 떠나 하고 생각했다. “앞으로 더 재미없겠군.”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집으로 들어와 침대위에 벌렁 누웠다.

그는 다시 젊어진 할머니를 생각했다. 그녀가 얼마나 죽음의 신을 속이고 더 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좋을 대로 잘 살겠지. 사는 것이 그리 좋고, 행복하다면 저러는 것도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쁜 일만 생기지 않는다면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그는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에이 나완 상관없는 일이야.’ 라고 그는 생각했다. 죽음의 신을 속이는 일만 빼면 말이다. 그는 죽음의 신을 속이는 요술 염통이 있는 곳에 손을 댔다. 그의 염통은 그렇게 뛰고 있었다.

그는 왠지 모를 미소를 지었다.